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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년에게

W. 미래

 

A

 

깜빡 졸았나 보다.

 

시끄러운 운동장 한쪽에 마련된 스탠드에서 앉아있다가 잠깐 잠이 든 게 분명했다. 흐릿한 정신으로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햇빛 때문에 눈이 잘 떠지지 않아 손으로 비비자 눈꺼풀을 깜빡이기가 조금 수월해졌다.

 

와아-,

 

운동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자 땀을 흘리며 축구를 하는 남자애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 애도 축구를 잘하는데, 생각하자마자 운동장에서 알록달록한 색들의 머리 사이에서 붉은색 머리를 찾았다. 하지만 한참을 찾고 있었는데도 보이지 않자 포기했다. 그 애의 붉은색 머리는 멀리서도 확 티가 났다. 먼 거리라도 찾지 못할 리가 없었다. 저 무리에 없나보다, 하고 생각한 후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고개를 돌리자 벚나무가 보였다. 몇 주 전만 해도 나뭇잎 하나 없었는데 3월이 지나고 4월이 되자 봄이 왔다는 것을 증명하듯 앉아있던 벤치 옆 벚나무들이 만개해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자 조금 긴 파란 머리카락과 함께 나뭇가지의 꽃봉오리가 좌우로 흔들리더니 하얀 벚꽃잎이 바람을 타고 눈처럼 떨어졌다. 허공으로 손을 뻗자 손바닥 위로 꽃잎이 춤을 추는 듯 사뿐히 내려앉았다. 예쁘네, 생각했다.

 

"승준아."

 

그 애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찬란한 붉은 머리가 눈에 가득 담겼다. 효진아! 벌떡 일어나 그 애 앞에 서서 입가에 미소를 걸고 대답했다. 어디 갔다 왔어? 왜 축구 안 하고 있어?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묻지는 않았다. 사실 물으려고 했는데 묻지 못한 게 맞았다. 말을 꺼내려고 입을 여는 찰나 그 애의 입술도 함께 움직였기 때문이다.

 

"좋아해."

 

어?

 

뭐야,

 

장난하지마. 내려가는 입꼬리를 애써 올리며 그 애의 가슴팍을 장난스럽게 퍽 쳤다. 그 애는 예쁘게 웃고 있었다. 가슴 속이 턱 막히고 눈이 아팠다. 울고 싶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것 같기도 해서 두 손으로 눈을 비볐다. 눈물이 들어가게 비비고 또 비볐더니 눈물이 눈꺼풀 안에서 고이다가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손을 내리고 빨개진 눈으로 그 애를 쳐다봤다. 정말 날 좋아해? 묻고 싶은 걸 눈물과 함께 꾹 삼켰다. 입가가 달싹였다.

 

그 애는 아까와 같은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울고 싶었던 게 행복해서 그랬던 건지 슬퍼서 그랬던 건지 잘 모르겠다.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의 대답을 생각하는 대신 입으로 그 애의 고백을 곱씹었다. 좋아해. 좋아해, 이승준. 눈을 감고 다시 뜨면 그 말이 사라지기라도 할 듯이 입으로 되짚고 또 되짚었다.

 

그 애는 여전히 찬란하게 웃고 있었다.

나를, 이승준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승준, 그 애의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동시에 들어간 줄 알았던 눈물이 꽃잎으로 덮인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꼬리 끝에서 턱 끝까지 한 줄기 액체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한 번 터진 눈물을 멈추지 않고 세차게 흘렀다.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승준아, 다시 한번 그 애의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어깨를 들썩이고 헐떡이며 숨을 들이마시고 뱉었다. 쏟아지는 손이 눈물범벅이 되자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그 애의 앞이라 웃는 모습만 보이고 싶어 애써 웃음을 지어보려는데 얼굴 근육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승준, 또 한 번, 그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입에서 흑흑 대며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내뱉으며 엉엉, 아이처럼 우는 소리가 났다. 서러웠다.

 

네가 뭐라고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해.

 

그 생각 하나로 운동장 한편에 주저앉아 팔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누가 쳐다보는 걸 신경 쓰지도 않고 울었다. 그 애의 표정은 보지 못했지만 분명 웃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좋아해. 좋아해, 승준아. 귓가에 그 애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거짓말."

 

너 나 안 좋아하잖아. 팔에 얼굴을 묻고 웅얼거리며 말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너 나 안 좋아하잖아!"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든 시선이 수업 중 벌떡 일어난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교실 한 가운데 자리에서 주목을 받게 되어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끼고 볼을 손으로 감싸자 물기가 느껴졌다. 이 물기가 눈물인지 땀인지 침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죄송합니다! 하고 소리친 후 자리에 앉았다. 수업 시간에 실컷 자다가 벌떡 일어난 한 학생 때문에 교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한번 터진 웃음은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어깨너머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자 새빨개진 볼 위의 물기를 손으로 벅벅 문질렀다.

 

"이승준, 수업 시간에 잤다고 아주 광고를 하지 그래?"

 

"죄송합니다."

 

아직도 키득거리는 소리로 소란스러운 상황과 선생님의 꾸짖음으로 얼굴이 더 달아올랐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물기 때문에 눅눅해진 교과서의 종이를 넘겼다. 수업 계속하자, 선생님의 목소리로 산만하던 교실이 조금은 잠잠해졌다. 책을 보느라 숙였던 고개를 들고 창가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 애다.

 

살짝 열린 창가로 불어오는 봄바람에 빨간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렸다. 좋아한다고 했다.

 

효진아, 네가 내 꿈속에서 날 좋아한다는 말을 얼마나 했는지 모르지.

 

-

 

"이승준, 오늘은 좀 시끄러웠다?"

 

아, 김효진! 장난스럽게 말과 함께 김효진이 등을 퍽 쳤다. 좋아서 입꼬리가 날아가려는 걸 참고 괜히 툴툴대며 대답했다.

 

"김효진 짜증 나."

 

"짜증 나?"

 

진짜?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되묻는 김효진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잘난 게 손으로 세고도 남는 김효진은 얼굴도 잘생겨서 나는 김효진의 얼굴에 약했다. 김효진 잘생긴 거야 하루 이틀도 아니긴 한데 가끔 뜬금없이 그 잘난 얼굴을 들이밀면 신나서 떠들다가도 입이 꾹 닫혔다. 눈치 없게 올라가는 입꼬리에 입술을 꽉 깨물고 김효진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몰라!"

 

평소 같았으면 짜증 안 났어, 하고 한발 물러섰겠지만, 오늘은 사정이 달랐다. 당장이라도 방금 꾼 꿈속에서 나한테 고백한 김효진의 얼굴과 오버랩돼서 죄책감이 들었다. 고개를 돌리고 있었음에도 김효진이 빵 터져서 웃고 있는 건 알 수 있었다. 뭐가 그렇게 웃긴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자 조금 짜증이 났다. 김효진 짜증 나! 짜증 나! 지금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심란한데. 꺼내지도 못할 말들을 속으로나마 소리쳤다.

 

"그래도 몸 너무 안 좋으면 보건실이라도 가."

 

툴툴거리고 있었는데 쿵, 하고 안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김효진이 다정한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닌데 당할 때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다정한 말 하기 전에 예고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물론 예고를 한다고 해서 김효진의 다정함에 면역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지만.

 

"얼굴도 빨개."

 

그래도 될 수 있으면 김효진이 나한테 다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4교시가 시작되고, 나는 진짜 보건실을 오게 되었다. 지금까지 얼굴이 후끈거린 게 김효진 때문이 아니라 감기 때문이었나, 물론 전자의 이유에 더 가까웠지만, 후자의 이유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와 보건 선생님만 있는 보건실은 선생님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고요했다. 4교시는 체육이었다. 창가 쪽 침대에 누우면 창문 너머로 운동장이 한눈에 보였다.

 

혼자 보건실에 있으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훨씬 안정된 상태로 창가 너머를 슬쩍 바라보았다. 누워있어도, 멀리서 봐도 김효진의 빨간 머리는 눈에 띄었다. 네이비색의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을 날아다니는 김효진은. 그래, 짜증 나게 멋있었다.

 

아예 창가 쪽으로 상체를 기울여 운동장(에 있는 김효진)을 본격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사실 최근 김효진의 머리카락 색의 반쯤은 갈색이 되어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여자친구를 갈아치우는 놈이니 김효진의 머리카락 끝쪽은 온전히 빨간색이었던 적이 드물었지만 이번에는 꽤 오래가는 듯했다. 김효진을 중학교 1학년, 14살 때부터 봐왔던 바로는 김효진은 원래 남한테 기대거나 부담을 주는 성격이 아니었다. 부탁도 잘 하지 않았고, 궂은일에 나서기도 잘했다. 그냥 천성이 남한테 피해 주기를 싫어하는 애 같았다. (나한테는 특히 더 그랬다) 근데 김효진은, 연애도 나보다 더 많이 해봤으면서 그런 문제는 다 나한테 기댔다.

 

예를 들어, 7반 누구랑 썸타는 중인데 카톡 답장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느니, 어제 4반 누구한테 고백을 받아서 사귀기로 했는데 첫 데이트 장소로는 어디가 좋을지, 밤새 게임하느라 여자친구한테 연락을 못 해서 삐졌는데 어떻게 풀어줘야 할지, 이런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다 나한테 의존했다. 솔직히 여기까지는 눈 딱 감고 넘어가 줄 수 있다. (사실 김효진이 나한테 기댄다는 게 기분 좋기도 하다) 제일 난감하고 짜증 나는 건 여자친구랑 헤어진 뒤 우울하답시고 그날 종일 나를 물고, 빨고, 주무르는 등의 만행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별로 애정이 있지도 않았던 여자에게 차였다며 종일 찡찡대는 김효진을 받아내는 건 다 내 몫이었다.

 

그런데 이번 여자친구는 꽤 오래가는 듯했다. 일주일마다 여친을 갈아치우던 시절에는 차였다고 찡찡대는 김효진을 받아주는 게 제일 귀찮은 일인 줄 알았는데 바퀴벌레 한 쌍의 스킨십 진도에 대한 진지하고 쓸데없는 고찰을 듣는 게 훨씬 귀찮고, 훠월씬 빡치는 일이었다. 그래도 뭐, 내가 자초한 일이니까. 하고 생각한다. 연애상담 계속 들어준 사람도 나였고, 여친이랑 헤어졌다고 울면서 나한테 매달리는 김효진을 받아준 것도 나였고, 그런 김효진을 좋아하게 된 것도 나였다.

 

그런 김효진이 내 꿈속에서 열렬히 구애해 온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두 손으로 세도 모자라서 카운트하는 건 진작에 그만뒀다. 아마 두 발까지 합해도 다 못 셀 거다. 이 중대한 문제의 발단은 별거 없었다. 평소와 같이 수업 시간에 자고 쉬는 시간에 일어났는데 내 앞자리에서 심심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두드리고 있는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순간 두근거렸을 뿐이다. 순간 두근거리고 말았던 건 줄 알았는데, 정말 별거 없었는데 그다음 수업 시간에 내 앞자리에 앉은 김효진이 고백하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 김효진은 심심한 얼굴로 핸드폰 액정을 두드리며 말을 걸었다. 깼어? 하고 묻자 으응. 하며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대답했다. 그리고 다음은

 

"좋아해."

 

그리고 깼다. 다행히 수업 시간에 깨지는 않았는데 이런 꿈을 꿨다는 게 너무 당황스러워서 한동안은 김효진을 피해 다녔다. (그 뒤로 김효진은 내가 잘못했으니 나 피하지 말라며 눈물의 고해성사를 했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잘못했다고 우는 김효진이 너무 잘생기고 좋아서 내가 더 미안하다고 같이 울었다)

 

그게 벌써 1년 전이다. 그때도 벚꽃이 예쁘게 피었었는데.

 

가끔 상상한다. 만약에 김효진이 진짜 나한테 고백한다면? 내가 김효진이랑 사귀게 된다면? 그럴 리 없을 거라고 단념하지만, 종종 김효진의 머리카락이 내 푸른색으로 물든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보나 마나 아름답겠지.

 

B

 

 

"나 여친이랑 깨졌다."

 

"푸웁."

 

 

아, 드러. 아무렇지도 않게 볶음밥을 입으로 쑤셔 넣고 있는 김효진에 내가 더 당황했다. 식판에 시선을 고정하고 숟가락을 씹고 있는 김효진에게 말을 걸었다.

 

"왜 또. 이번에는 오래가더니."

 

"내가 찼어. 자기 전에 전화 좀 안 했다고 존나 뭐라고 해서."

 

"허이구, 어쩐지 멀쩡해 보이더니 니가 찼냐? 그리고 투정 좀 받아주지 겨우 그걸로 헤어지냐고."

 

"이번만 그런 거 아니야. 전부터 집착 오지게 해서 정떨어지던 참이었음."

 

"구라 까네. 니 머리카락 아직 반은 갈색이거든?"

 

 

식판 위를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김효진의 팔이 갑자기 멈췄다. 뭐야, 그냥 던진 거였는데 정곡을 찔렀네. 역시 넌 내 손바닥 위라니까? 신나서 떠들었더니 숟가락과 식탁이 부딪치는 소리가 꽤 크게 나서 밥 먹는 걸 멈추고 고개를 들어 김효진을 쳐다봤다. 입안에 먹을 걸 가득 넣어 빵빵한 볼과 울음을 참으려고 빨개진 눈이 가관이었다. 얘도 보면 참 울보였다. 우냐? 울어? 신나서 깝죽댔다.

 

 

"…. 진짜 좋아했는데."

 

"지가 찼으면서 울고 지랄이야. 누가 보면 니가 차인 줄 알겠다."

 

"승준아, 형 슬프다."

 

"형은 누가 형이야. 징그럽게."

 

"야, 나 슬프다고!"

 

"아, 어쩌라고!"

 

 

김효진이 다시 식판에 시선을 돌렸다. 무슨 부탁을 할지는 알고 있었다. 하아, 아직 김효진의 말을 듣지도 않았는데 한숨이 나왔다. 이승준, 하고 부르길래 왜. 하고 대답했는데 밥은 먹지도 않고 반찬만 뒤적거리며 뜸을 들이는 걸 보니 미안하긴 한가보다. 새끼,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서 다행이네.

 

 

"오늘 우리 집 올 거지?

 

 

올 거지? 내가 김효진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하는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승준, 땅 꺼지겠다."

 

"너 때문이잖아."

 

"그래서, 올 거지?

 

“...그래 가자, 가!"

 

"아싸!"

 

 

오늘도 이 새끼의 수작에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신나서 밥을 퍼먹는 김효진의 빨간 머리통을 숟가락으로 때려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김효진이 여친이랑 헤어졌다는 게 꽤 좋아서 그런 것도 있었다.

 

 

-

 

 

"…. 실례합니다."

 

"아무도 없어, 들어와."

 

"너네 누나는?"

 

"너 우리 누나 보려고 오겠다고 한 거지."

 

"아니거든. 내가 니냐?"

 

"뭐야 그거. 좀 기분 나빴는데."

 

 

몰라, 말 안 해. 몇십번, 아니 몇백 번은 와봤던 김효진의 방에는 익숙한 냄새가 났다. 야, 라면 먹을래? 방 밖의 부엌에서 김효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드라마에서는 여주인공이 남주인공한테 쓰면 백 번에 백 번은 넘어가는 흔한 수작 방법이던데 김효진한테는 이런 말 들어도 하나도 설레거나 그런 게 없었다. 대체 왜 나는 얘를 좋아하는 거지?

 

 

"야 이승준, 라면 먹을 거야 말 거야!"

 

"먹어! 먹는다고!"

 

 

갑자기 짜증이 확 나서 생각하기를 멈췄다. 왜 짜증이야! 부엌에서 김효진의 목소리가 들리길래 미안! 하고 대답했더니 잠잠해졌다.

 

 

가방을 방문 옆에 가지런히 내려놓고 마이를 벗어 책상 의자에 대충 걸쳐놨다. 낮에 수업 시간에 꾼 꿈 때문에 보건실에 가서도 잠도 못 자고 김효진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는데 방과 후에도 김효진에게 붙잡혀있다니, 신이 나를 시험하는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어 좌절했다.

 

김효진의 침대에 누웠다. 몸이 침대에 떨어지자 팡 하는 소리와 함께 김효진의 냄새가 확 풍겼다. 따뜻하고 마음이 안정되는 냄새였다. 아, 양말 안 벗고 누웠다. 저번에 양말 안 벗고 누웠다고 3시간 치 설교를 들은 게 생각나서 일어날까 생각했는데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러고 있는데, 하는 생각이 더 커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침대에 마구 뒹굴었다. (뒹굴다가 양심에 찔려서 양말은 벗었다)

 

부엌에서 불닭 냄새가 났다. 불닭 냄새만 맡아도 김효진 생각이 난다는 이유로 한동안 불닭을 멀리했더니 냄새만 맡아도 침이 고였다. 그나저나, 김효진은 침대에 잠이 잘 오게 하는 향이라도 피워 놓은 건지, 불닭 끓이는 냄새에 정신이 몽롱해진 건지 눈꺼풀이 무거웠다. 자면 안 되는데. 불닭 먹어야 하는데. 김효진네 집에서 김효진 꿈을 꾸면 곤란한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던 것 같다.

 

 

-

 

 

눈을 뜨고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처음으로 한 생각은 김효진 꿈 안 꿔서 다행이다, 였다. 그런데 금방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다 못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었다. 자기 전에는 이불을 덮지 않았는데 등 쪽이 따뜻한 게 누군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자기 전에 누웠을 때는 똑바로 누운 자세였는데 옆으로 누운 자세로 바뀌어있었다. 무엇보다 차마 말하고 싶지 않은 부위에 손길이 느껴졌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어서 내 뒤에 있을 김효진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야, 김효진. 너 지금 어딜 만지냐?"

 

"깼어?"

 

"아니, 손 떼라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나마 차가운 손으로 한 손은 볼에 갖다 대고 한 손으로는 내 가슴을 주무르고 있는 김효진의 손목을 잡았다. 생각보다 순순히 손을 떼는 김효진에 벌떡 일어나 태연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는 김효진에게 쏘아붙였다.

 

 

"너 진짜 미쳤냐? 어딜 만져."

 

"뭐 어때, 친군데."

 

"너 진짜 죽고 싶냐?"

 

 

김효진이 손을 놓자 쏜살같이 침대에서 벗어나 김효진에게 등을 지고 섰다. 얼굴뿐만 아니라 온몸이 뜨거워지다 못해 익어서 머리 위에 김이 나는 것 같았다. 심장이 비상식적으로 크고 빠르게 뛰어서 정적인 김효진의 방에 내 심장 소리만 들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놀랐는데 김효진은 친구끼리 그럴 수도 있지 같은 짜증 나는 소리를 잘도 해냈다. 더 짜증 나는 건 김효진의 애무 같지도 않은 애무에 반응하고 있는 아랫도리였다. 아랫배가 묵직해져 오는 느낌에 심호흡하며 가라앉히려고 했는데 방 안에 가득한 김효진의 냄새에 참을 수가 없어졌다. 김효진의 방문을 열었다.

 

 

"…. 어디가?"

 

"화장실."

 

 

남의 집에 와서 딸쳐보긴 또 처음이었다. 괜히 비참한 마음이 들어서 힘이 빠진 다리를 이끌고 화장실로 가는 그 짧은 길에 평생 쉴 한숨을 다 쉬었던 것 같다. 이 와중에 아직도 진정되지 않은 심장이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다.

 

 

C

 

 

"승준아, 이승준."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눈을 뜨니 눈앞이 김효진의 방 벽지 색인 연두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등 뒤에 느껴지는 인기척은 김효진의 것이 분명했다. 가슴께에서 지분대는 손길이 느껴지는 게 오늘 낮의 상황과 일치했다.

 

 

"읏, 김효진 이거 놔라…."

 

"승준아."

 

 

낮에 그랬던 것처럼 순순히 손을 치워줄 줄 알았는데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손길이 더 진득해졌다. 있지도 않은 가슴을 모아서 주물거리는 김효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당황해서 김효진의 손목을 잡고 저지하려는데 김효진의 손끝에 유두가 스쳐서 흐읏, 하고 이상한 소리가 났다. 눈물이 고여서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좋아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김효진의 야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손으로 막은 입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울지 않으려고 눈을 꼭 감았는데 오히려 고여있던 눈물이 감은 눈 사이로 넘쳐흘렀다. 손을 멈추지 않는 김효진에 앓는 소리가 입에서 끊이지 않고 나왔다. 김효진, 그만. 그만해….

 

 

-

 

 

…. 뭐 그런 꿈을 꿨다. 김효진네에서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라면 먹고, 집에 와서 잤다. 종일 김효진에게 시달려 피곤해서 빨리 씻고 잤는데…. 그런 꿈을 꾼 것이다.

 

일어나보니 창문 밖은 여전히 깜깜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아래가 축축했다. 아무리 김효진 꿈을 많이 꿨어도 이 정도까지 간 적은 없었는데…. 부모님 몰래 속옷을 빨러 화장실을 가는 아들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조심조심 화장실의 불을 켜고 들어와 속옷에 물을 묻히려고 샤워기의 손잡이를 잡아 열었다. 바닥에 아무렇게다 던져진 속옷이 물에 적셔지는 걸 보고 한숨을 쉬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샤워기를 거울에 던질 뻔했다.

 

좆됐다. 진짜 좆됐다.

 

파란 머리카락 끝이 빨간색 물감에 살짝 찍은 것처럼 물들여져 있었다.

 

하하 이것도 꿈이겠지…. 하는 생각에 허벅지 안쪽도 꼬집어보고, 볼도 찰싹 소리 나게 때려보고 머리카락을 잡아 뜯으려는 심산으로 당기기도 해봤는데 반은 빨간색이고 반은 파란색인 머리카락이 빠져서 손바닥에 남아있을 뿐 꿈에서 깨지지는 않았다.

 

무슨 정신으로 샤워기를 고쳐잡고 속옷을 다시 빨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멍한 표정으로 속옷을 빨아 빨랫줄에 널어놓고 방에 들어와 불을 켜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파란색과 빨간색이 섞여 있었다.

 

눈을 꼭 감았다 떠봐도, 빨간색이었다. 눈을 비볐다가 다시 떠봐도, 빨간색이었다. 방안을 가득 울릴 정도로 짝 소리가 나게 뺨을 때려봐도 볼도 함께 빨개질 뿐, 머리카락은 빨간색이었다.

 

 

"…. 말도 안 돼."

 

 

비상이었다.

 

 

-

 

 

"이승준 뭐하냐?"

 

 

흠칫, 김효진보다 학교에 먼저 도착해서 종일 피해 있을 심산이었는데 등교하자마자 들켜버렸다. 평소 같았으면 시끄럽게 떠들면서 김효진과 친구들의 등짝을 한 번씩 때려주면서 소란스럽게 등장했을 테지만 오늘은 사정이 달랐다. 안 그래도 작은 몸집을 더 작게 웅크리고 손으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조용히 김효진 옆을 피해 자리로 가려고 했다. 김효진이 말만 걸지 않았다면. 김효진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내 앞에 섰다.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어서 내 신발 앞에 김효진의 신발이 나란히 놓이는 게 보였다.

 

 

"아직도 아파? 어제 일찍 보내줄 걸 그랬나? 근데 니가 어제 불닭은 꼭 먹고 가야겠다고 그랬잖아. 불닭 나중에 먹고 집에 가서 쉬지 그랬냐고."

 

 

다정함과 걱정스러움이 한가득 묻은 김효진의 목소리에 목이 턱 막혔다. 불닭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손에 힘이 빠졌다.

 

 

"아니 그게…."

 

"머리 아파? 보건실 데려다줘?"

 

 

머리 얘기가 나오자마자 손을 내리고 아니! 하고 소리쳐버렸다. 교실의 모든 시선이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김효진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소리를 질러서 놀란 건지 내 머리카락 색 때문에 놀란 건지 모를 일이었다.

 

 

"아니 그니까…."

 

"너 머리카락은 뭐냐?

 

 

그러니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빨리 변명을 생각해야만 했다. 내가 김효진을 좋아한다는 걸 김효진이 알아서는 안 됐다. 김효진 앞에서 굳어버린 머리를 느리게나마 굴려보았다. 머리카락 뭐냐고. 김효진의 표정이 싸늘했다. 들켰나? 심장이 빠르게 뛰어서 변명하려고 해도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 일단 나가서 얘기해!"

 

 

대답을 끌수록 교실의 시선이 나와 김효진에게 모여지는 게 느껴져서 잘한 건지 못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김효진을 교실 밖으로 끌고 나왔다. 김효진은 나에게 손목을 잡힌 채 순순히 끌려왔다. 사람이 별로 없는 음악실 복도에서 멈췄다. 잠긴 음악실 문 앞에 서서 김효진의 손을 놓으니 김효진은 무섭게 따져 왔다.

 

 

"머리카락 뭐야?"

 

큰 산을 하나 넘었으나 더 큰 산이 하나 남아있었다. 김효진의 물음에 눈을 꼭 감고 변명거리를 생각했다. 생각해내야 했다. 친한 빨간 머리 여자애를 한 명이라도 떠올려보려고 했는데 단 한 명도 떠오르지 않았다. 빨간 머리, 김효진, 빨간 머리, 김효진 이 두 글자만 머리에 맴돌아서 아주 죽을 심산이었는데 한 명이 떠올랐다.

 

 

"효, 효은 누나!"

 

"뭐?"

 

 

머리에 그 이름이 떠오르자마자 다이렉트로 입을 통해 대답해버린 탓에 복도가 울릴 정도로 크게 대답해 버렸다. 거짓말이 들킬까 봐 김효진의 눈을 피하고 고개를 숙였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미, 미안해. 먼저 말했어야 했는데, 하고 대답하려는데 김효진한테 멱살이 잡혔다.

 

 

"…. 언제부터였냐."

 

"ㄲ, 꽤 된 거 같은데…."

 

"너는 내가 우습냐?"

 

 

김효진의 대답에 심장이 진짜로 멎는 듯 했다. 설마 들켰나?

 

 

"나한테 좋아하는 사람쯤은 말해줄 수 있는 거였잖아."

 

 

아, 다행이다. 안 들켰구나. 김효진이 연애에 젬병인 게 이럴 때 쓸모가 있었다.

 

 

"미안해…."

 

 

됐어, 가자. 종 치겠다. 삐진 건지 멱살을 놓고 먼저 걸어가는 김효진의 뒤를 쫄쫄 따라갔다. 어쨌든 내가 김효진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김효진이랑 떨어지는 건 상상도 하기 싫었다.

 

 

-

 

 

그렇게 김효진의 나와 효은 누나 이어주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김효진은 나와 효은 누나 사이에서 아주 제대로, 쓸데없이 제대로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할 말도 없으면서 쉬는 시간에 괜히 효은 누나 보러 간다며 같이 가자고 하고, 화장실 갔다 온다고 여기 꼭 붙어 있으라고 한 뒤에 종 칠 때까지 나타나지 않아 교실로 돌아갔는데 김효진은 자리에 아주 멀쩡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앉아있었다. 수업 시간 내내 내 쪽을 흘긋흘긋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길래 죽을래? 하는 입 모양을 했다. 김효진은 알아들은 건지 못 알아들은 건지 어깨를 으쓱이며 휘파람을 부는 시늉을 해서 수업 시 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김효진을 때려주려는 걸 참았다. 쉬는 시간 종이 치자마자 김효진의 자리로 찾아갔더니 누나랑 얘기 잘했냐면서 물어보길래 참을 수 없어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그뿐만이 아니라 주말에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며 늦잠을 자려던 걸 방해하는 거로 모자라 약속 장소에는 김효진뿐만 아니라 효은 누나까지 있었다. 김효진은 그렇게 좋아하던 떡볶이를 몇 개 먹지도 않고 화장실을 간다며 사라졌다가 둘이 떡볶이를 다 먹고도 나타나지 않았다. 집에 가는 길에 김효진이 있을 것 같은 피씨방에 갔다가 태평하게 배그나 하고 있는 빨간 머리통이 보여서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치고 야, 이승준! 하는 김효진의 목소리도 무시하고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김효진 덕분에 효은 누나와의 썸 같지도 않은 썸을 2주째 타고 있을 때, 효은 누나가 학교에서 나를 불렀다. 사실 김효진 빼고 둘만 만나게 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직감적으로 누나가 고백하려고 그러는가 보다. 하고 느꼈다. 효은 누나는 내 손목을 잡고 사람이 없는 학교 뒤로 데려와 잠깐 뜸을 들이고 말했다.

 

 

"승준아, 나랑 사귈래?"

 

 

김효은 누나는 얼굴이며 성격까지 김효진이랑 똑 닮은 사람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성별이나 나를 대하는 태도 정도일 것이다. 효은 누나가 고백하는 목소리에 꿈속의 김효진이 겹쳐 들리고, 효은 누나의 수줍어하는 얼굴이 김효진의 얼굴과 겹쳐 보여서 순간 나도 좋아한다고 대답을 할 뻔했다.

 

 

"…. 죄송해요 누나."

 

 

그뿐이었다. 효은 누나한테는 미안한 말이었지만, 김효진 정도의 설렘은 느끼지 못했다. 그대로 찼다.

 

그 뒤의 효은 누나의 얼굴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말 없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효은 누나가 뒤돌아가자 나도 교실로 돌아가기 위해 뒤돌아 걸었다. 김효진한테 뭐라고 말하자? 이 상황에서도 나는 김효진 생각 뿐이었다. 머리카락은 여전히 빨간색이었다. 멍한 얼굴로 교실을 들어가자 김효진이 달려와서 소란스럽게 물었다.

 

 

"뭐래? 사귀자고 했지? 사귀냐? 오늘부터 1일?"

 

"시끄러워…."

 

 

얼굴을 들이밀며 자기가 고백을 받은 마냥 신나서 쫑알대는 김효진을 밀어내고 한숨을 푹 쉬며 자리에 앉아 엎드렸다. 뭐야. 김효은이 고백한 거 아니었어?

 

 

"맞아."

 

"그래서, 사귀기로 했냐고."

 

"아니. 찼어."

 

 

뭐? 김효진이 놀라서 크게 소리쳤다. 미간을 찡그리고 귀를 막는 시늉을 했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내가 찼으니까 효은 누나 얘기하지마."

 

 

황당한 얼굴로 굳어있는 김효진을 무시하고 책상에 엎드려 누웠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잠이라도 좀 자야 괜찮아질 것 같았다.

 

 

-

 

 

처음에는 복잡하게 생각해서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좋아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먼저 말을 걸지 않자 조금 두려워졌다. 나랑 효은 누나 이어주려고 열심히 했는데 내가 차버려서 화난 건가, 아님 효은 누나를 좋아한다고 거짓말한 걸 알아차려서 화난 건가? 어찌 됐든 김효진이 화가 난 게 분명했다.

 

뭐라도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쉬는 시간에 김효진의 자리에 찾아갔다. 쉬는 시간에는 자리에 붙어 있던 적이 없었던 김효진답지 않게 책상 위에 엎드려 자는 건지, 암튼 엎드려 있었다. 괜히 자는 애를 깨우고 싶지는 않아서 어깨를 손가락 끝으로 살짝 찔렀는데 무슨 튀겨지는 팝콘처럼 튀어 올라서 놀란 마음을 달래야 했다.

 

 

"왜?"

 

"아니, 그니까…."

 

“응.”

 

"그니까, 시험공부 같이하자고!"

 

"어?"

 

 

-

 

 

"야 이승준."

 

"말 걸지 마. 나 공부하는 거 안 보이냐."

 

 

나는 이렇게 된 상황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냥 학교 끝나고 피씨방이나 가자고 하면 됐었던 일인데 그 상황에는 피씨방 가자는 말이 생각의 범위에 있지도 않았었다. 덕분에 겨울방학 때 사놨다가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문제집을 김효진의 집에서 처음 펼쳐보았다.

 

 

"풉, 너 문제집에 낙서하던 거 다 봤음."

 

"아, 봤냐?"

 

 

킥킥대는 김효진을 흘깃 째려보고 다시 영어 지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돌렸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검은 것은 글자고 흰 것은 종이구나…. 뻘생각을 하다가 시간이나 때우고 집에 가자. 하는 생각으로 대놓고 문제 아래 널널한 부분에 낙서나 하고 있었다. 야 이승준 먼저 공부하자고 한 거 너거든? 웃음기가 가득한 김효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아. 아는데 너무 어려워서 못 풀겠다고."

 

"모르겠으면 물어보던가."

 

"너도 영어 못하잖아."

 

"야, 이 형이 못하는 게 어딨어."

 

 

줘 봐. 내가 알려줄게.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하고 문제집을 가져가 집중해서 문제를 읽는 김효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공부하겠답시고 안경을 쓰고 있었고 문제를 푸느라 집중해서 입술을 쭉 내밀고 있는 얼굴이…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순간 감탄했다.

 

 

"야, 얼굴 뚫리겠다."

 

"…. 미안."

 

 

너무 티 나게 쳐다봤나 싶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힐끔힐끔 김효진의 얼굴을 훔쳐봤다. 김효진이 문제를 풀었다며 지문에 필기까지 해가며 설명해주는데도 이해가 하나도 안 됐다. 문제를 다 설명해주고 이해됐지? 하고 자기 공부를 하는 김효진에 다시 검은 것은 글자요, 흰 것은 종이구나…. 상태에 들어갔다. 해석도 안 되는 지문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김효진의 문제집을 힐끔 쳐다봤는데 김효진은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었다.

 

 

 

"너 그래서 저번에 그건 뭐였냐?'"

 

"뭐?"

 

"니 머리카락."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때 효은 누나한테 대충 고백을 받아주고 차이는 게 제일 나은 선택이었나 하고 후회를 해봤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내가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하자 김효진은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마. 하고 말했다. 괜히 미안해져서 미안…. 하고 말했다. 언제까지나 내가 김효진을 좋아하는 걸 숨길 수는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야 이승준. 너 키스 해 본 적 있냐?"

 

"뭐?"

 

"있냐고,"

 

"없는데, 너 지금 나 놀리냐?"

 

"없으면 나랑 해 볼래?"

 

"뭐?"

 

 

머리가 딩 울렸다. 동시에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짧은 정적이 길게 느껴졌다. 너 미쳤냐?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넘어 내 앞으로 걸어오는 김효진에게 놀라서 소리쳤는데 김효진은 대답도 안 했다. 점점 가까워져 오는 김효진에 앉은 채로 뒷걸음질을 했다. 김효진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그에 나는 빠르게 뒤로 물러났는데, 등 뒤로 김효진의 침대가 있는 게 느껴졌다.

 

 

"빨리 말해. 해 말아?"

 

 

너 같으면 빨리 대답할 수 있겠냐? 김효진은 신경도 안 쓰고 내 앞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김효진에 뒤로 물러나다가 김효진의 침대에 걸렸다.

 

저번에도 이 침대였다. 이 침대가 문제인 것 같다. 침대로 올라가 최대한 김효진에게로 도망치려고 했는데 오히려 침대로 올라온 게 문제였던 것 같다. 침대 끝까지 물러나자 등 뒤는 벽이었고, 손목이 김효진에게로 잡혀 침대에 눕혀졌다.

 

손목이 잡히자 버둥거리며 놓으라고 소리쳤는데 나랑 체격부터가 다른 김효진은 꿈쩍도 안 했다. 고개를 돌리니 김효진과 눈이 마주쳤다. 김효진을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김효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가는 줄도 모르고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김효진이랑 친해진 이후로 이렇게 말없이 눈만 마주치고 있는 것도 처음이었다. 긴 정적이 이어졌지만, 누구 하나 먼저 말을 꺼내려 하지 않았다. 김효진이 내 위에서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것 같길래 나를 가두고 있던 김효진의 팔을 밀치고 일어나려고 했다. 김효진이 원한다면 없던 일로 해줄 의향도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갑자기 김효진이 내 턱을 잡더니, 그대로 입술이 부딪혔다.

 

 

 

 

 

 

 

 

 

 

 

 

 

 

 

 

 

 

 

 

 

 

 

 

 

 

 

 

 

 

 

 

 

 

 

 

안녕하세요 미래입니다 ^^ 제가 마감을... 드디어 마감을 했네요 사실 방학 때 합작 신청을 해서 개학 하기 전까지는 글 다 쓸 수 있겠지 뭐 ^^ 라는 아주 안연한 생각에 글을 거의 2월 마지막주 토요일 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ㅠㅠ 어떻게 마감을 했네요 참... 제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ㅠㅠㅠ 풍페스 빨면서 글은 삼사천자 정도 끄적인게 전부였는데 어떻게 제가 만오천자를 썼네요... 참.. 역시 사람이 목표가 있으면 못 할게 없다는 걸 이번 합작을 통해 느꼈습니다(?

 

 

사실 합작 신청 할 때는 주제로 별일 아냐를 하려고 했는데 제가 신청할 때쯤에 별일아냐가 마감을 해셔... 얼음불로 넘어오게 되었네요 신청할 때부터 컬러버스로 써야겠다~~ 하고 신청한거라 그냥 얼음불로 신청해야지 ~~~ 했던건데 마감할 때쯤 되니까 조금 불안해지네요...흑흑 감안하고 봐주세요

 

글에 대한 말을 하고 싶은데요... 컬러버스라는 설정이 들어가게 된 건 사실 예전에 혼자 풀었던 썰 중에 톄스효승으로 풀었던 컬러버스 썰이 있었습니다 긴 파란머리의 톄스승즈니 머리카락 끝이 점점 빨간색으로 물들어서 결국은 머리를 단발로 잘라머리는 게 보고싶다 ~~~ 하는 썰이었는데요... 그대로 톄스로 쓸까 하다가 청게가 보고싶어서 썼습니다…

 

효승이들이 사귀게 됐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제가 보고싶었던 건 그냥 헤테로효 짝사랑하는 승주니였어서... 근데 제가 승주니만큼 절절한 짝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루겟서요,,, 근데 사귀지 않을까요? 아무리 팬픽이라도 어느 남정네들이 침대에서 가슴 만지고 키스했는데 사귀지도 않고... 제가 김효진이면 없던 마음도 생길 것 같아요((?

 

그리고 마감하면서 얼음불을 반복재생하면서 들었더니... 노이로제 걸릴 것 같아요 이제 한동안 그 노래 못 들을 것 같습니다...

 

아암튼 합작 주최해주신 총대님 너무 수고하셨고 다른 참가자분들도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 풍페스 온리전 열리는 그날까지...!!ㅁ

Orginal-ONF | Piano - Luna Piano - WeMust Love (Piano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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