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생연분[前生緣分]
W. 가을
“진아, 효진아! 어디 있어?”
“예, 도련님! 지금 갈게요!”
대답이 들리고 머지않아 사랑마당에 효진이 들어섰다. 효성을 도와 장작더미를 쌓고 있던 터라, 때가 탄 무명 저고리가 옷고름이 살짝 흐트러진 채로 땀에 젖어 있었다. 왔어요, 도련님. 분합문을 열어 대청에서 작은 도토리마냥 굴러다니던 승준이 효진을 보더니, 방에 들어가서 양손에 각각 무언가를 쥐고 나왔다.
“아, 해 봐라.”
“또 무얼 하시려구요.”
승준이 양손을 뒤로 감추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선선한 가을바람에 그의 웃음이 나붓거렸다.
“비밀이다. 해 보라니까, 어서.”
효진이 입술을 삐죽거리다가 이내 입을 조금 벌렸다. 그러자 승준이 제 왼손에 쥐고 있던 것을 효진의 입속으로 쏙 넣었다. 혀에 닿는 느낌이 딱딱하고, 달았다. 인상을 찌푸리다가 금세 눈이 동그래지는 모습을 본 승준이 푸하하, 청량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잉게, 머예요?”
단맛이 싫지는 않은지 우물거리며 이게 무엇이냐 물어오는 효진의 눌린 발음 때문에, 승준은 또 웃음이 터져 버렸다. 간신히 웃음을 멈춘 승준이 짐짓 점잖은 체를 하며 놀렸다.
“어허, 똑바로 말해야지! 예의도 없구나!”
“와아… 너무하심니다!”
“알겠다, 알겠어. 옥춘(玉春)이야. 광에 몰래 들어갔는데, 맨 위 소쿠리에 조금 있더라구.”
“에?”
효진이 놀란 눈이 되었다가 눈썹이 팔자가 되면서 뭐라 하려는 것을 눈치 챈 승준이 오른손에 있던 옥춘을 재빨리 효진의 입속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효진의 표정이 더 울상이 되었다. 그렇지만 옥춘의 크기가 마냥 작은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우리 도련님께서 주신 건데 감히 뱉을 수는 없잖아.
승준이 다시 대청에 엎드리고 누워 가만히 효진을 바라보았다.
“또 아, 해 봐라.”
아직 채 녹지 않은 옥춘과 다디단 설탕물이 입에 한가득이었다. 효진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도 계속 독촉하는 탓에 처음보다는 꽤 작아진 옥춘을 아작아작 씹어 삼켰다. 그러고도 잠시 머뭇거리자 승준의 손이 다가왔다.
보들보들 여린 손이 시야를 점점 채웠다. 그리고 양 볼이 꾸욱, 눌렸다.
“와! 진짜 붉구나!”
효진이 황급히 몸을 뒤로 뺐다. 그야 당연히 도련님께서…! 도련님의 그 귀하신 손이 볼에 닿았는데 어찌 붉어지지 않겠느냐고, 차마 뒷말은 잇지 못하고 삼켰다.
“보여 줄까?”
“아, 아니요! 됐습니다!”
“씁! 기다려 봐.”
효진의 말 따위는 가볍게 제지하고 방으로 후다닥 들어간 승준이 면경을 들고 나왔다. 승준의 작은누이가 재작년, 승준이 열 살을 맞이한 날에 선물해 준 것이었다.
도련님의 고집을 누가 꺾으랴. 홍화(紅花)를 수놓은 쪽빛 당혜까지 신고 내려오시려 하기에, 결국 효진이 다시 대청마루 가까이로 갔다.
“착하기도 하지. 어떠냐? 네가 봐도 붉지?”
얼굴은 효진의 생각만큼 붉어져 있지 않았다. 오히려 지극히 평소의 얼굴빛이었다. 옥춘의 색소가 물들어 약간 붉게 번들거리는 입술을 제외한다면. 옥춘 때문에 붉어진 걸 말씀하신 거구나…. 효진은 괜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입안도 봐라. 혀는 더 붉다?”
“입술이 이리 물들었는데 혀는 더 붉겠지요. 놀리시려고 부르신 겁니까?”
“씨이… 맛있는 것을 줘도 토라지는 것이냐? 너무한다!”
“토라지지 않았습니다. 맛있는 건 도련님께서 다 드셔도 모자란데 어찌 저 같은 것에게 주셔요.”
그 말에 승준의 동그란 두 볼이 살짝 상기되었다. 듣기 좋았는지 배시시 웃는 얼굴이 노오란 금사작마냥 그리 앙증맞고 고울 수가 없었다.
“그래두… 너도 단것이 좋을 나이잖아. 겨우 나보다 한 살 많으면서.”
이 참판 댁 막내 도련님께서 단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이미 마을에서 유명했다. 서당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쓸 때도 빈사과(氷沙果) 하나를 손에 들려 주면 고 깜찍한 입을 오물거리며 씩씩하게 다녀오곤 했다. 그런 승준이 몰래 찾은 옥춘을 두 개나 효진에게 준 것은, 딴에는 대단하다고 할 수도 있을 만한 일이었다.
“이따 효성 형님이랑 장거리를 돌고 오려는데, 올 때 당과(糖菓)를 좀 사다 드릴까요?”
“응! 어찌 그리 영리하기도 하니? 좋구나아~”
승준은 당과를 사다 준다는 소리에 또다시 헤실헤실 웃었는데, 엄중한 성정의 큰누이가 봤다면 어찌 그리 웃음이 헤프냐고 다그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효진이 느끼기에는 달았다. 단것을 좋아한다고 사람도 덩달아 달아진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으나, 승준을 볼 때면 괜히 입안에 단맛이 돌았다. 웃을 때 접히는 큰 눈도, 청량한 웃음소리도, 맑고 앳된 옥안도, 곱고 하얀 손가락마저 달게 느껴졌다.
“형님, 사람이 달 수도 있어요?”
“달아? 으음, 신열이 오르면은 몸뚱이가 불덩이마냥 달기는 하지.”
“아아니, 그게 아니구요. 단맛 있잖어요.”
“단맛? 사람이? 몸에 꿀을 발라 놨더냐?”
“아휴, 됐어요. 그런 거 아니에요.”
시전 몇 군데를 들러 생선을 사고, 고기도 사고, 둘째 아씨께서 좋아하시는 양다래도 조금 샀다. 이제 승준에게 약조한 당과전만 들렀다 가면 되었다. 장거리를 돌면서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긴 제 친형에게 요전부터 궁금하던 것을 물었으나 소득이 전혀 없었다. 암것도 모르는데 다 크면 뭘 하나…. 효진이 속으로 한숨을 삼킬 때 효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알았다. 효진이 너,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거지?”
“예? 무슨 소리를…. 당치도 않습니다! 제가 누굴 좋아합니까?”
“그건 나도 모르지. 그 뭐시냐, 정인이 생기면 쓴것도 달댄다. 그러니 정인은 얼마나 달게 느껴지겄어, 안 그냐?”
“그래요…?”
좋아한다니…. 누가? 내가. 누구를? 도련님을?
아니, 아니다. 효진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도련님께서 단것을 좋아하셔서 단내가 몸에 배였을 수도 있잖아. 그러니 달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달게 느껴진다고 좋아한다는 것은 절대, 절대로 아니었다. 감히 무엄하게 누구를. 게다가 저와 제 도련님은 같은 사내아이였다.
“자아, 도련님은 네가 더 잘 아니까. 나는 저자 입구 연죽전에 가 있을 테니, 다 사면 거기로 와.”
어느새 당과전에 도착해 있었다. 효성이 엽전이 든 염낭을 효진에게 건네주고서는 연죽전으로 향했다. 대충 눈으로 쭈욱 훑으니 승준이 좋아하는 것들은 이것저것 다 있었다. 흡족해진 효진이 제가 먹을 것도 아닌데 설레는 마음으로 하나씩 골랐다.
황색, 홍색, 청색 등 색색이 물들은 차수과, 동글동글하니 뽀얀 타락병, 벌꿀이 잔뜩 묻어 반질거리는 연약과, 붉은색이 곱게 윤이 나는 오미자편 같은 것들을 조금씩 담았다. 마지막으로 승준이 제일 좋아하는 정과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각각 모과와 다래, 사과로 만든 것과 편강까지 샀다. 신이 나서 뒤적거리다 보면, 분명 편강은 왜 샀냐며 타박할 것이 눈에 선했다. 아마도… 새앙은 싫단 말이다아! 이렇게.
어쩌겠는가. 도련님께 맛있는 것만 드리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것보다 잔병치레 없이 몸 성히 무탈하시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큰 것은 이미 제 의지를 벗어났다. 좋은 것이라면 전부 가져다 드리고, 향기로운 것들로만 도련님 주위를 꾸밀 터이니, 오래도록 즐기시려거든 투정일랑 마시어요.
가장 전하고 싶은 마음이면서, 정작 본인에게는 전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
“진아, 가자! 어서! 여직 채비를 못 마친 게냐?”
“다 되었어요. 성미도 급하시긴.”
“너 자꾸, 막… 버릇이 없어진다?”
“열여섯이나 되셨는데 아이 같으셔서요.”
“내가 철없고 그렇단 것이지? 너 정말,”
“앳되십니다.”
들고 있던 서책으로 효진의 등짝을 때려 주려다가 마지막 말을 듣고는 승준의 손이 멈칫했다. 이제 막 날이 풀린 화창한 경칩(驚蟄)이었는데 얼굴에 열이 올랐다. 말이나 못하면…. 꼭 두견화마냥 양 뺨이 곱게 붉어진 승준이 뒤에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효진이 승준 모르게 웃었다.
뒷산을 올라 작은 계곡을 앞에 둔, 버려진 암자에 가기로 했다. 효진은 간단한 요깃거리를 조금 챙기고 승준은 서책 하나를 손에 들고 나란히 산을 올랐다. 효진에겐 그저 날이 풀렸으니 나들이나 가자고 했지만, 사실은 글공부를 조금 알려 줄 생각이었다.
“진아, 공부가 왜 이리도 싫은 게냐?”
“도련님에서 공자님이 되시더니 더 게을러지셨습니다.”
“네가 몰라서 그래. 얼마나 재미없다구.”
“저는 배워 본 적도, 배울 일도 없는데 어찌 알겠어요.”
“어…?”
“아… 도련님, 잊어 주세요. 실언입니다. 이만… 이만 물러갈게요.”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저 지루하기 짝이 없어 효진에게 투정을 부렸던 것인데 생각이 짧았다. 어릴 적부터 친우처럼 지내 와서, 거리낌이 없어서 각자의 신분을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가까울수록 더 깊게 헤아려야 하는 것인데. 그래서 오늘 효진 몰래 나름 선물이랍시고 준비한 것이다. 좋아할지 몰라서 조금 두렵기는 하지만.
산중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덕분에 땀 한 방울 없이, 어느새 암자에 다다랐다. 효진이 찬합을 쌌던 연녹색 보자기를 끄르고 대충 두 사람이 앉을 마루를 털어 냈다. 그것은 중요치 않았고, 승준의 눈에는 찬합 옆에 놓인 호리병이 보였다.
“진아.”
“잠시 기다리셔요. 아무도 안 찾았는지 더러워서,”
“술이냐?”
“예?”
효진이 기겁하는 목소리로 승준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내 승준의 시선을 천천히 따라가 보았다. 아이고, 우리 도련님… 식혜를 보시고 술이라 하시니 이를 어이할꼬….
“드시고 싶으십니까?”
“술이냐 묻지 않았니.”
“식혜입니다. 무슨 술을 벌써 드시려고….”
“내 나이가 벌써 열여섯이다, 열여섯.”
열여섯이기는 하나, 여태 어떤 혼담도 오가는 일이 없었다. 정해진 혼약도 없었다. 승준의 아버지 이 참판은 임금께서 손수 천거하신 이조 참판이었기 때문에, 고용한 중매쟁이가 웬만한 문벌가의 규수를 소개하여도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제 아들인데, 자신과 같이 임금에게 직접 부름을 받을 수도 있는 몸이 아닌가.
승준이 입술 끝을 쀼죽하게 내밀고 효진을 흘겨보다, 곧 시선을 거두고서 새침하게 마루에 가 앉았다. 승준은 꼭 효진 앞에서만 어려졌다. 커 가면서 평소의 언행 또한 나이에 맞게 점잖아졌는데, 효진과 있을 때면 어리광을 부린다든가, 투정을 부리거나 했다. 토라졌을 때는 흥! 소리까지 내며 꼭 지금처럼 몸을 돌렸다. 그럼에도 효진은 성가신다거나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제게만 보이는 모습이었으니까. 그런 앙증맞은 모습들은 전부 효진에게만 보여 주는 것들이었고, 효진밖에 볼 수 없었다.
“진아, 찬합 좀 열자.”
“벌써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 않니. 올라오면서 허기가 진 것 같다.”
“도련님도 참… 그래도 잘 드시니 좋습니다.”
“그렇지?”
승준 옆에 나란히 앉아 작은 목배(木杯)에 식혜를 따르고 찬합을 열었다. 고운 황색의 송화다식이 은은한 향내를 퍼뜨렸다. 마침 정자 곁에도 소나무가 있어 그 향이 배가 되는 듯하였다. 앞에는 얕은 계곡물이 졸졸졸, 옆에는 둘도 없는 서로의 지우(知友)가 있었다.
“이리 즐기시기만 하실 거면서, 책은 왜 들고 오셨습니까?”
“책? 아, 맞다…. 으음, 실은 글을 좀 가르쳐 줄까 하여….”
“제게요?”
“그래. 허나 네가 싫다 하면 뭐…, 그저 즐기다 내려가자.”
“도련님, 어찌 이리 혜념(惠念)이 깊으셔요. 저야 마다할 까닭이 없지요.”
“그러냐?”
말을 하면 할수록 눈치를 보며 시선을 피하던 승준의 목소리가 금세 밝아졌다. 신이 나서 정자에 앉자마자 내팽겨치고 잊어버렸던 서책을 집어들고, 저와 효진 사이에 놓았던 음식을 뒤로 밀어 놓았다. 그리고는 효진에게 조금 더 가까이 붙었다. 들뜬 채로 책장을 넘기는 승준과 달리, 효진은 둘 사이의 거리가 신경이 쓰여 호흡까지도 천천히 정돈했다.
“어… 논어는 어려울 것 같아 시경을 들고 왔거든?”
“그러셨어요?”
“뭐… 듣고 싶은 시라도 있어?”
“무지한 제가 뭘 알겠습니까. 그저 도련님의 목소리에 집중할 뿐이지요.”
“내 요즘 읽는, 격고(擊鼓)라고 있다. 그거 한 구절… 읽어 줄게.”
승준이 흠흠, 목을 가다듬고는 그 고운 목소리를 내었다.
“사생계활(死生契闊), 여자성설(與子成說). 집자지수(執子之手), 여자해로(與子偕老).”
“그거 참… 도련님께서 싫증을 내시는 까닭도 알 것 같습니다. 당최 무슨 소리인지….”
“아무개 병사가 제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라는구나. 여기, 보면 좀 알겠어?”
효진은 말만 할 줄 알았지, 영락없는 문맹이었다. 글을 아는 노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몇이나 된다고 그러는가. 엄연히 말하면 효진이 노비의 신분은 아니었으나, 어찌 되었건 행랑살이를 하며 하인 노릇을 했으니 아랫것은 맞았다. 하층민이 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매우 드물었다. 그저 주인의 분부를 들을 줄 알고, 그에 대한 대답과 받은 분부를 행할 줄만 알면 되었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효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 아는 것은 사(死), 생(生), 자(子), 수(手)밖에 없었다.
“생과 사, 혹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하자고 그대와 언약하였었지. 그대의 고운 손을 잡고 해로를 약조하였지.”
밝았던 승준의 목소리는 시의 분위기에 따라 살짝 가라앉았다. 전쟁에 끌려간 아무개 병사의 이야기는 맞았다. 그저 효진에게 읽어 준 부분을 달리 해석한 것뿐이었다. 약조한 적은 없었지만, 항상 함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확하게는 혼자 생각한 것이니, 함께하고 싶었다는 게 더 옳을 테지만. 죽든지, 살든지, 멀리 떨어져 있든지. 그때가 언제든, 그곳이 어디든.
승준은 태어나자마자 온갖 어여쁨을 받았지만, 그만큼 부족함을 느꼈다. 참판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연고로, 적성에도 안 맞는 학문 수양에 정진해야 했고, 말투와 걸음걸이 하나하나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모두의 관심이 거짓으로 보였다. 내 존재조차도 거짓 같은데.
그런 승준이 유일하게 편했던 상대가 효진이었다. 집안의 유일한 동년배였고, 저를 편하게 만들어 주었으며, 그만큼 자신을 어렵지 않게 대하기도 하였다. 그와 함께 있으면 신분 따위는 괘념치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단것들을 좋아하는 척하며 당과들을 사 오라 시켰고, 사 온 당과들의 절반은 틈틈이 효진의 입속에 넣어 주었다. 여름에 불러서 시원한 오미자차를 먹였고, 겨울에 불러서 군고구마와 군밤을 먹였다.
자신의 그 모든 춘하추동이 효진을 향해 있고, 효진에게 연모지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 때는 작년, 열다섯의 나이였다. 작년 여름, 개도 안 걸린다는 고뿔에 걸리더니 신열이 멈출 줄을 모르고 올랐다. 환청을 듣고 환각을 보기도 했다. 몸이 감당할 수 없어 이대로 죽는 것은 아닐까, 하며 달아오른 눈물이 관자놀이로 흐를 때 한 사람이 그리웠다. 제 아비도 아니고, 제 어미도 아니었다. 효진이었다. 죽는다면 마지막으로 그 얼굴을 눈에 담고 죽고 싶었다.
“도련님… 왜 우시는 거예요….”
효진이 승준의 동그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 손을 뻗었다가, 볼 근처에서 멈칫거렸다. 허공에 맴도는 그 손길이 너무나도 다정했다. 그래서 제 볼을 그 손에다 대었다. 놀란 효진이 뭐라 하기도 전에 승준이 고개를 돌려 굳은살이 박힌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누구라도 감히 추접하다고 역정조차 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순수하고 순수한 입맞춤이었다.
“어디선가 들었어. 세 번의 생이 있다고.”
“…….”
“이게 몇 번째 생일지 모르겠지만, 첫 번째면 좋겠어. 다음 생에서도, 그 다음 생에서도 널 만나게.”
“…….”
“이렇게 오만방자한 놈은 또 못 봤다, 내가. 대답도 안 하구.”
“뵈어야지요. 더 좋은 날, 더 좋은 세계에서. 아무런 방해도 없이 모든 게 허락되는 세상에서.”
여직 볼에 닿아 있던 효진의 손에서 온기가 전해졌다. 투박한 엄지로 눈가 아래를 살살 어루만지며 눈물을 닦아 내는 것이 그리도 애탈 수가 없었다. 승준이 그 손을 이끌어 마주 잡고 깍지를 꼈다. 어려서부터 단단했던 손과 한결같이 곱고 부드러운 손이 만들어 낸 이질감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을 정도로 포근하고 안락했다.
“진아, 나는 네 이름이 왜 이리도 좋을까.”
“농도 지나치십니다. 상시 저를 ‘진’이라 부르시지 않으십니까.”
“애칭이다! 그만큼 네 이름이 좋은 것인데, 솔직히 나처럼 특별하게 불러 주는 이도 없지 않니.”
그건 그랬다. 효진은 효진아, 하고 불리거나 이름조차도 안 불리면 여봐라! 하고 불리었다. 달리 별칭을 만들어 저를 부르는 사람은 정말 승준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랐으나, 승준이 제 이름을 부를 때마다 괜히 더 기분이 좋고는 했다. 온전한 제 이름이 아닌데도, 온전히 저만을 부르는 칭호였으니까.
“내가 네 이름을 부를 때마다 행랑 어른들께 고마워한다는 것을 모르지?”
“예? 행랑에는 제 어미와 아비밖에…. 설마 제 부모님이요?”
“그래, 네 부모 말이다. 네 이름을 참 곱게 짓지 않았니.”
양갓집 아래부터는 이름을 막 짓는 것에 반해, 효진의 부모는 자신들의 아는 인맥을 총동원하여 아이의 작명에 공을 들였다. 평소 덕행을 쌓아 온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그렇게 탄생한 이름이 ‘효진’이었다. 새벽 효(曉) 자에, 보배 진(珍) 자를 쓴 이름이었다. 새벽의 보배. 효진의 형은 효성(曉星), 새벽의 별이었다. 효진이 어느 정도 이해력이 생겼을 때쯤, 그의 부모는 이름의 뜻을 알려 주었다. 여명(黎明)이 밝아올 즈음에 네가 태어났다고, 타오르는 태양보다 아름다운 홍옥(紅玉)을 잘 깎아 만든 아기 같았다고. 그리고 효진이 조금 더 컸을 때, 그의 부모는 그에게 미안하다 사죄했다. 가문도 없고, 부유하지도 않고, 읽을 서책 하나도 없는 주제에 새벽의 별과 보배를 훔쳐 온 것이라고. 효진은 제 부모가 형과 자신을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제 부모가 공들인 이름을, 자신의 주인이 그토록 아끼고 있었다.
이런 잡념에 사로잡혀 있다가 어느새 정신을 차리니, 눈앞에서 곱고 하얀 손이 흔들거렸다.
“너 안 듣고 있었구나?”
“… 죄송합니다. 이리 아끼시는 줄 몰라 놀랐어요.”
“됐다. 너, 내 이름에 대해선 어찌 생각하느냐? 항시 도련님, 도련님 타령이구, 내 이름을 불러 보고 싶지는 않아?”
“도련님! 제가 어찌 존함을 함부로….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칫, 내가 뭘 어쨌다구. 잔뜩 부풀어 있던 마음이 순식간에 바늘로 톡 터뜨린 마냥 죽어 버려, 서운해진 승준이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러나 입술까지 뿌우- 내밀고 토라진 자신을 달래기 위해 어쩔 줄 모르는 효진을 모습을 보고는 금방 풀렸다.
“이승준.”
“예?”
“기억해, 내 이름. 도련님 같은 그딴 호칭 붙이지 말고. 이승준, 딱 이거 하나만 기억해.”
그 당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간질간질거렸다. 꽉 맞물린 깍지를 놓으면 한들한들 날아가 버릴 것처럼. 그래서 둘은 한참이나 그렇게 손을 잡고 있었다. 승준은 효진의 품에 기대서 평소처럼 재잘거렸고, 효진도 그에 여유롭게 맞장구를 쳐 주었다.
“내생에는 네가 도련님이구, 내가 하인이면 어떡하지?”
“어떡하긴요. 엄청 부려먹어야지요.”
“뭐어?”
“농입니다. 별당에서 같이 살고 싶어요. 내가 특별히 아끼는 아이라고 감싸면서.”
“치, 그럴 수 있으면 내 진작 그렇게 하였지.”
신나게 떠들다 보니 어느새 노을이 졌다. 붉은빛의 운기가 계곡 속에 녹아들어, 투명하던 물도 고운 적황색으로 빛나며 흘렀다. 뒷정리를 할 때서야 잠깐 손을 놓았다가, 산을 내려가면서는 거리를 좁혀 나란히 걸으며 손등을 부딪치면서 걸었다. 토닥토닥, 맞부딪치는 소리가 정다웠다.
그렇게 걷다가 어느새 대문 앞에 이르러, 효진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 모시려고 하는데 승준이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효진이 승준을 돌아보니, 맑은 눈동자에 석양빛의 여운이 물들어 아름다웠다.
“진아.”
“네, 도련님.”
“내일… 찾아갈 터이니 기다려라.”
“저를 부르시면 되는 일 아닙니까.”
“모르겠어. 내가 네게 가는 것이 더 빠를 것 같다.”
“알겠습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길이 엇갈리면 큰일이니, 꼭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라.”
승준의 말을 곱씹으며 이부자리를 펴던 효진이 갸웃거렸다. 가택이 크기는 했으나 길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돌아다녀 봤자 집안일 테니 길이 엇갈려도 찾으면 그만이었다. 뭐… 직접 오신다 하셨으니 번거로울 일을 만들기 싫으신 거겠지. 고민했다는 게 무색할 정도로 금세 결론을 내 버린 효진이 새벽에 일어나 소세를 마치고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
효진이 눈을 뜨자 보이는 건 하얀 천장이었다. 이해가 안 돼서 한참을 눈만 깜박였다. 이질감이 느껴져서 왼손을 들어 보니, 링거액에 연결된 주삿바늘이 보였다. 고개를 돌리니 침대에 상체만 기대고 잠든 제 어머니가 보였다. 아, 병원인가 봐. 돈은 어디서 났는지, 제 침대 하나밖에 안 보이는 걸 보면 1인실이었다. 효진이 침대 위를 더듬거리다가 호출 버튼을 눌렀다.
“환자 분!!! 정신이 드세요?”
“으음…? 어머, 효진아! 괜찮아? 엄마 보여?”
간호사가 버튼을 누른 지 삼 초만에 들이닥친 것 같았다. 그 시끄러운 소리에 풋잠을 자고 있던 엄마도 깨어났고.
“며칠이에요?”
“네?”
“입원한 지 오래됐어요?”
“쓰러진 지 삼 일 만에 깨어나신 거예요. 주치의 선생님 불러올 테니까, 가만히 있어요!”
왜 꿈속이나 현실이나 죄다 가만히 있으래. 간호사가 후다닥 뛰어나가고 효진의 엄마는 울면서 효진의 손을 붙잡았다. 삼 일…. 시간을 중간에 건너뛰기는 했으나, 꿈속에서는 열셋부터 열일곱까지, 약 사 년을 산 것이었다. 그것도 조선시대에서. 정확히 말하자면 직접 살았던 것은 아니다. 누가 봐도 저였던 하인 김효진은 물론이고 걔가 모셨던, 누구랑 닮은 것 같은 이 도령의 속마음까지 알 수 있었으니까. 비유하자면 전지적 작가 시점 정도? 덕분에 처음 듣는 조선말? 같은 것들도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 우리 조상 중에 행랑살이한 조상 있어요?”
“어머, 선생님은 언제 오시는 거야…. 효진아, 조금만 기다려. 네가 지금 좀 혼란스러워서 그래. 공백이 삼 일이니까.”
“멀쩡하거든요? 이씨 가문에서 행랑살이했을 거예요. 뭐더라, 참판?”
“괜찮아. 무슨 꿈이라도 꾼 것 같은데 그냥 잊어버리렴.”
“아, 진짜! 잊을 만한 꿈이 아니라서 그래요!”
효진이 짜증을 내자, 그제야 그의 어머니가 눈물을 그치고는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글쎄…. 엄마 시집올 때 어렴풋이 들었던 얘긴데, 자세히는 몰라. 가문이 몰락해서 대가 끊길 뻔했는데 이씨 어른께서 거두어 주셨다고 그랬던 것 같아. 완전 하인은 아니고, 조상님께서 고마워서 자청해서 하인 일 하셨다구. 아마 참판 맞을걸.”
꿈과 꼭 같았다. 이 참판이 워낙 인자한 성품을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하인치고는 대우를 잘 받았다. 제 조상들이 행랑채에 살면서 하인 노릇을 해 준 것이다. 이번 생이 몇 번째 생인지는 몰라도, 전생에서 모셨던 도련님을 찾아야 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겉도는 것처럼 꿈을 꾸었지만, 분명 꿈속의 효진은 제 전생이었다. 그리고 꿈속의 둘은 서로의 기구한 운명이었고.
희한하게 꿈속의 내용은 선명한데 도령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꿈속에서는 신분 차이가 났으니 그의 이름을 부를 기회가 없었고, 자연히 그의 이름을 몰랐다. 그래서 직접 알려 주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는 게 문제였다. 분명 뭐라고 했는데…. 꼭 기억하라고….
“이승준.”
“예?”
“기억해, 내 이름. 도련님 같은 그딴 호칭 붙이지 말고. 이승준, 딱 이거 하나만 기억해.”
와… 졸라 멋있어…. 우리 도련님, 선견지명 하나는 끝내주셨네…. 그런데 잠깐만, 이승준?
효진이 현생에서 알고 있는 이승준은 한 명밖에 없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전학 온 이승준. 그때 당시 혼자 앉았던 효진은 개절망했다. 시이발…, 짝이 생겼어…. 하다가 얼굴 보고 의자까지 빼 주었다. 야, 나 여자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네 얼굴 보고 생각이 바뀌었거든? 그러니까 나랑 사귈래? 하마터면 이딴 헛소리를 지껄일 뻔하기도 했다. 그때 제가 소위 말하는 ‘얼빠’라는 것을 깨달았다.
승준과 효진, 서로가 서로의 운명이라는 것은 거의 99.9% 확실했다. 승준은 효진과 친해지기 전까지는 항상 진아, 하고 불렀다. 지금은 필요 이상으로 친해서 비속어가 난무했지만. 그리고 중학교 2학년 이후로 현재 고등학교 3학년까지 승준과 효진은 한 번도 빼먹지 않고 같은 반이었다. 심지어 고1부터는 트리플 2반이었다. 이 정도면 그냥 2의 저주 아닌가? 이승준이랑 둘끼에서 식사하고, 두 시에 영화 보고, 노래방은 2번 방 들어가서 두 시간 동안 성시경 씨의 두 사람만 부르기라도 해야 되겠네. 와아- 김효진 복 받았다!
“아, 근데 오늘 무슨 요일이에요?”
“오늘? 목요일이야.”
꿈에서 승준과 나들이를 갔던 날은 수요일이었다. 내일 찾아오겠다고 했으니, 분명 오늘 승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링거액 꽂혀 있어서 못 움직이니까 도련님 말대로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다. 더럽게 맛없는 병원 밥으로 저녁을 때우고, 주치의의 두 번째 회진까지 받고 나니까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오늘 안에 오기는 하려나. 간이 침대에서 자면 된다는 엄마를 겨우겨우 말려서 집으로 보낸 효진이 핸드폰을 확인했다. 전화, 카톡, 문자 등 온갖 연락이 쌓여 있었다. 가장 많이 연락한 건 승준이었다.
“연락은 존나게 했으면서 찾아오지는 않는다 이거지.”
효진이 남색 가디건을 환자복 위에 걸치고 문을 열려는 순간, 복도에서 먼저 문이 열렸다. 그리고 가득 찬 숨을 몰아쉬는 승준의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보였다.
“김효, 진…. 하아… 만나서 다행이다….”
“왜 이제 와. 연락한 거 보니까 걱정은 우주 최강이시더만.”
“와 줘도 지랄이냐! 숨차서 죽겠는데.”
효진은 꿈속의 이 도련님과 승준의 싱크로율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확실히, 제 운명이 맞았다.
“들어와. 물 줄게.”
“나 진짜… 아줌마한테도 매일 물어봐도… 너 안 깨어났다구…. 그래서….”
가볍게 몸을 돌린 효진과 다르게, 승준은 그 자리에 서서 울먹거렸다. 당황한 효진이 다시 뒤돌아 승준의 안색을 살폈다.
“야, 너… 울지 마.”
“안 울거든? 어떤 멍청이가 너 때문에 우냐?”
승준이 톡 쏘아붙이며 그렁그렁한 눈가를 벅벅 비볐다. 나 참…. 효진이 헛웃음을 짓고는 승준의 손목을 잡고 병실 안으로 들였다. 얼마나 세게 문지른 건지, 빨개진 눈가가 울어서 그런 줄 알았다. 효진이 먼저 침대에 앉고는 제 옆자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이리 와.
“병원 문 닫혀…. 나 빨리 가야 돼….”
“알면서 이 시간에 오냐?”
“그럼 어떡해. 내가….”
“네가 뭐. 너 근데 나 깨어난 건 어떻게 알았어. 오늘 우리 엄마 하루 종일 나만 보느라 폰 본 적 없었는데.”
“아, 그게…. 야자실에서 자다가….”
“꿈꿨지?”
승준의 눈이 동그래졌다. 꿈 내용은 말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놀라는 것을 보니, 아마도 효진과 같은 꿈을 꾼 것일 터였다. 자기처럼 며칠을 쓰러져 있던 것은 아니니까 다는 아니고, 오늘 찾아오겠다고 한 부분 정도는. 효진이 승준의 팔을 잡아 이끌자 순순히 침대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근데 그거… 우리 전생일까?”
“그 연으로 묶였으니까 지금 너랑 나랑 만났겠지. 그 뭐냐, 홍연인가 하는 붉은 실 얘기도 있잖아. 같은 꿈도 꿨으면서 것도 몰라, 이 멍청한 도련님아.”
“와… 하인이었으면서 김효진 존나게 무엄하네.”
“아이고~ 도련님께서 그런 상스러운 언행은 삼가셔야지요~”
그 말에 승준이 효진을 팩- 쏘아보았다. 효진이 왼손을 들어 보이며 나 환자야~ 하고 놀리니, 승준이 효진의 다리를 걷어찼다. 아악!!! 병실에 안쓰러운 신음성이 울렸다.
“내 이름이나 실컷 부르면 용서해 줄게. 너도 알겠지만 내가 전생에서 도련님 소리만 징하게 들은 게 한이거든.”
“이승준, 이승준, 이승준, 이승준, 이승준.”
로맨틱이라고는 좆도 모르는 새끼야. 승준이 시원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효진은 제게 향한 날카로운 눈초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 오른손으로 승준의 왼손 아래를 파고들어 깍지를 꼈다. 열 개의 손가락들이 맞물리고, 두 개의 손바닥 사이에는 빈틈이 없이 서로의 체온이 맞닿았다.
“로맨틱하지.”
“그 말만 안 했으면.”
샐쭉해 있던 얼굴에 푸스스- 꿈에서 봤던 그 투명한 웃음이 퍼졌다.
“야, 이 정도면 신까지 나서서 이어 주는 거 아니냐?”
“어쩌라고.”
“튕기네.”
“알면 좀, 빨리 고백하든가.”
“죽어도 지가 먼저 할 생각은 없지.”
“아니거든?
“해 보든가.”
손깍지는 다붓하게 맞잡아 놓고서 괜히 아옹다옹 다투다가 미묘해진 분위기에 침묵이 맴돌았다. 해는 이미 다 졌고, 꼴에 1인실이랍시고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무드등의 조명이 은은하게 병실 안을 가득 메웠다. 효진의 도발에 승준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서 눈알만 또르륵 굴렸다. 거봐, 못 할 거면서. 귀엽다는 듯이 효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됐다. 내가 할,”
눈앞에 두 눈을 꼭 감은 승준의 얼굴이 가까워지더니, 금세 밤색 머리카락에 살짝 가려진 기다란 속눈썹만이 보였다. 쪽- 귀엽고, 짧디짧은 입맞춤이었다. 입술이 닿기는 닿았나 싶을 정도로 살짝, 정말 찰나였다. 열여섯일 때는 손바닥에 해 주더니, 열아홉이라고 입술로 발전한 건가. 우리 도련님 진도 참 차근차근 밟으신다. 달아오른 승준의 볼과 귓가는 차분한 노란빛 조명이 닿아 주홍색이 되어 있었다.
별다른 말은 오가지 않았다. 그저 맞잡은 손을 놓지 않고, 침대 아래로 나란히 다리를 흔들거리고,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어색함에 웃다가 뽀뽀하고. 이제 막 사랑하는 어린 정인들의 모습이란 이리도 깜찍한 것이었다.
참으로 기나긴 시간을 돌아온, 더 아름답고 넓어진 세상에서 만난, 소중한 나의 인연.
<후기>
합작은 처음 참여하는 거라 다소 걱정했는데 잘 마쳐서 다행이에요. ㅠㅠ ‘I Do’를 주제로 다루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는데, 가사를 계속 곱씹다가 전생연분이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슉슉 써 내려갔습니다! 하나 아쉬운 건 조금 급하게 썼던 탓에 맥락이 부자연스럽고 급전개 같은 감이 없잖아 있다는 거...? ㅎㅎ 마지막으로 합작주님과 참여해 주신 분들, 모두모두 감사드리고 수고하셨어용!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