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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나, 나랑 너 1

W. 아루

 

“꽃이 피고 지듯이 너랑 나도 마찬가지였어.”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시간이었지.”

 

 

“하지만 꽃은 다시 피어나.”

 

 

[의중지인 意中之人] 마음 속에 생각하여 정해놓은 사람

 

 

여명이 창문을 타고 들어와 침대의 모서리에서부터 천천히 밝혀 들어옴과 동시에 효진은 눈을 떴다. 이른 아침이었다. 효진은 방금까지 제가 꾼 꿈 내용을 천천히 곱씹으며 이때는 언제더라, 하는 생각에 빠져들어갔다. 왜 갑자기 꾸지 않던 그 때의 꿈을 꿨지? 생각하기에도 잠시, 효진은 다시 꿈 속으로 서서히 잠겨 들어갔다. 남들은 풋풋하다 여기었지만 자신만큼은 흑역사라 여기어 기억 깊은 곳에 묻어둔 그 기억이 왜 지금에서야 돋아나는가. 의문은 풀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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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싫어하면 어쩌지.

효진은 보기보다 소심한 구석이 있었다. 덜컹거리며 학교를 향하는 차 안에서도 효진은 내내 그 생각만 했다. 키도 제일 작고, 얼굴도 잘생긴 편도 아니었으며, 목소리도 작았던 효진이었다. 하다못해 낯가림까지 있어 말솜씨도 없었다. 내세울 거라고는 어릴 적부터 칭찬받아왔던 노래 솜씨 하나.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생각해보려 했으나 진정되지는 않았다. 일단 들어가서 인사하기. 그리고 어.. 이름 말하기. 또... 잘 부탁한다고 말하기. 또... 또 뭐가 있지? 또... 아, 진짜 모르겠어. 이승준이랑 같은 학교라고 하던데. 걔한테라도 가서 말 걸어볼까.

 

“효진아, 첫인상이 중요하다니까 말도 많이 하고 많이 웃고!”

아, 엄마. 가뜩이나 고민인데 염장을 질러버렸다. 효진은 미세하게 입꼬리를 늘려 웃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승준이 알지? 우리 집에 종종 오는 아줌마 아들. 같은 학교라며. 걔는 붙임성도 좋아서 친구도 많다던데, 이번 기회에 좀 친해져봐. 어쩜 너는 그렇게 애가 소심하니?”

효진은 고민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엄마한테 내가 알아서 한다며 소리를 칠까, 아니면 그냥 조용히 갈까.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말할 수 있었지만 부메랑처럼 돌아올 잔소리를 생각하며 효진은 목젖까지 올라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속마음을 꿀꺽 도로 삼켰다.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교실에는 저마다의 눈빛으로 효진을 쳐다보는 50개의 눈동자들이 있었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떨리는 손을 바라보던 효진은 들리지 않는 한숨을 내뱉었다. 제발 목소리 떨리지 마라.. 떨리지 마라.

 

“김..효진이야.”

아, 망했네. 누가 봐도 떨리는 목소리였어. 효진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비소를 머금었다. 효진은 자신이 한심해서 미칠 것 같았다. 이번 생은 망했어. 뒤이어 이어지는 친구들의 박수소리에 효진은 신의 멱살을 붙잡아 내 성격은 왜 이렇게 생겨 먹었는지 따져 묻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심정으로 겨우겨우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은 자리는 교실의 제일 뒷자리였다. 당장이라도 책상에 머리를 박고 기절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첫 날이니까, 괜찮아. 만회할 수 있어.

 

그런 생각은 옆을 돌아보는 순간 와장창 깨져버리고 말았다. 효진의 옆자리에는 승준이 앉아있었다. 그것도 효진을 쳐다보면서 얼굴 한가득 웃음을 담은 채로. 아, 세이브 미. 누가 저 좀 살려주세요. 효진은 다짐했다. 닥치고 살자. 하지만 어쩐지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머릿속을 휘감고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불안감이었을까, 기대감이었을까. 답은 알지 못했다. 효진도 사람이니까.

 

승준은 엄마의 말대로 굉장히 친구가 많은 아이였다. 잠을 자려고 해도 친구가, 화장실을 갈 때도 친구가, 밥을 먹을 때도 친구가. 그에 비해 효진은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잠을 잘 때도 혼자, 화장실을 갈 때도 혼자, 밥을 먹을 때도 혼자. 첫 날에 전학생에게 흥미를 느끼고 다가온 친구들은 ‘김효진’ 이라는 사람을 마주하자마자 혀를 내두르더니 서서히 다가오지 않았다. 어떤 시련이 와도 난 여기에서 버틸거야. 난 외롭지 않아. 효진은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자신에게 되뇌였다. 하지만 마음이 어쩐지 시려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효진도 감정을 느끼니까.

 

그 날은 효진이 학교에 와서 치루는 첫 수행평가가 있는 날이었다. 효진은 그 사실을 학교에 와서 승준을 통해서 뒤늦게 알았다. 유일하게 자신이 있던 노래. 그 노래도 좋아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친하지 않은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사실은 굉장히 효진을 주눅들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효진은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두 손을 조심히 말아쥐고서는 쭈뼛대며 나간 것과는 다르게 노래를 부르는 효진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했다. 적어도 자신이 느끼기에는. 고작 교과서에 실린 노래였을 뿐이었지만. 부끄러워 발그레해진 볼과 입술을 적시는 습관 덕에 반짝거리는 입술은 행복이라는 충만한 기분에 휩싸인 얼굴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효진은 그 날 이후 괴상망측한 기분에 휩싸여 지내야만 했다. 원래도 제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승준이 급기어 이제는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의외스럽게 노래를 잘하는 새로운 친구의 등장과 반의 비타민과 소란스러움을 맡고 있는 친구의 조합. 자연스레 효진과 승준의 주변에는 친구들이 와글와글 들끓을 수밖에 없었다.

 

효진과 승준은 성격이 달랐다. 이미 부모님들의 얘기로 인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얘기였지만. 자신에게 예의없이 무작정 다가오는 친구들에게 속으로 ‘제발 떨어져 줘..’ 하고 생각하며 정작 말하지는 못하는 효진과는 다르게 승준은 자신 특유의 큰 목소리에 풍부한 표정을 더해 거부하거나, 애들을 리드하며 분위기를 이끌어나갔다. 승준에게는 자신감만이 있었다. 맞다, 자신감만이 있었다.

하지만 효진은 그게 싫지는 않았다. 넌 어떻게 그렇게 노래를 잘해? 반했잖아. 종종 효진에게 쏟아지는 질문세례들을 자신이 막아내며 유연하게 말을 돌리는 승준이가, 야, 얘 부담스럽대잖아! 한 명씩 와서 말해 한 명씩! 효진아, 쟤네 무시해. 라고 말하는 승준이가. 야, 너 방금 네 친구들에게 있는 인상 없는 인상 다 찌푸리며 짜증을 낸 지 채 10초도 안됐어. 방긋 웃으며 얼굴을 들이대는 승준을 빤히 쳐다보던 효진은 고개를 홱 돌렸다. 한쪽 귀를 통해 승준의 칭얼거림이 들려왔다. 칭얼거림을 가볍게 무시하며 넘기는 효진의 입 꼬리에 자그마한 웃음이 달렸다.

 

처음 느껴보는 많은 관심과 사랑이었다. 효진은 창 밖을 바라보며 어느 때부터 내 주변이 바뀌었는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미 사라져버린 시린 마음에 대해.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비교하며 가늠하는 자신에 대해. 효진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그래도.. 마냥 싫지만은 않은 것 같아. 효진은 생각했다. 햇빛이 창문 틈 사이를 통해 들어와 효진을 비추었다. 효진의 귀 끝이 발그스름하게 달아올랐다.

 

언제부터인가 효진은 승준과 종종 얘기를 나누었다. 얘기라고 해보았자 짧은 몇 마디, 그리고 언제나 승준의 지속적인 공세와 효진의 철벽적인 방어로 끝났지만 -효진만의 생각이었다-. 효진은 몰랐다. 주변인들의 시선이 얼마나 달라져가고 있는지, 승준의 눈빛이 어떠했는지, 자신의 눈빛은 또 어떠했는지.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효진은 달라져가고 있었다. 종이에 물이 서서히 스며들듯, 효진은 새로운 자신의 모습에 서서히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효진이 학교에 오고 난 뒤 맞는 첫 축제가 다가오고 있었다. 효진의 목소리를 극찬하던 음악 선생님은 그 날 이후 효진에게 계속해서 무대에 서자며 설득했다. 하지만 효진의 강렬한 반대로 벼랑에 몰린 선생님은 급기어 생기부로 협박을 하며 계속해서 효진을 설득했고, 결국 성공하여 효진에게 솔로 노래 무대를 따냈다. 승준과 반 몇몇의 친구들은 춤을 추겠다며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 나가 엉덩이와 머리를 흔들며 춤을 연습했다. 언제는 노래를 너무 크게 틀어서 학생주임 선생님이 쫓아온 적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혼나면서도 승준은 마냥 행복하다는 듯 효진을 보며 방긋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효진은 승준의 음악을 듣지 않았다. 다른 음악을 들으며 책을 펴고 있어도 춤추는 승준이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춤의 멜로디가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승준은 언제나 시선도 표정도 늘 한결같이 효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라, 이건 또 뭐지. 무언가가 90도로 솟아오르는 느낌이었다. 괴상한 느낌에 효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상하게 웃음이 따라 나왔다. 진짜 나 미쳤나. 효진은 자신의 이상증세에 대해서 병원을 가봐야 하나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이내 머리를 털며 생각을 떨쳐냈다. 너무 긴장해서 그런거겠지. 처음이잖아. 안하던 짓을 해서 그런가? 이게 다 이승준 때문이야.

 

효진은 이 기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그마한 떨림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깊이 생각하면 분명히 복잡할 것이 뻔하니까. 자신은 이 감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지만 효진은 애써 무시한 채 눈을 감았다. 복잡한 것은 싫어, 라고 되뇌이면서. 어쩐지 마음 한 켠이 아파왔다.

 

축제 날이 다음 날로 다가오고 있었다.

 

 

[ 2화는 추후 트위터 아루 @LT8833HU 와 포스타입을 통해 올릴 예정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에서의 효진X승준 간질간질하면서 설레는 조합을 기대해주세요. ]

Orginal-ONF | Piano - Luna Piano - WeMust Love (Piano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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