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alling on you
W. 김덕구
*가정폭력 등 트리거 요소가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ㅠㅜ
“아, 아악!”
효진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아, 학교구나. 학교에서 가위에 눌린 것은 처음이었다. 기껏해야 악몽이었는데. 요즘 몸 상태가 안 좋아져서인지 환시도 자주 보이고 가위눌리는 횟수도 잦아졌다. 고개를 푹 숙이고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쉬고 있는데 따가운 시선들이 뒷통수에 날아와 박힌다. 고개를 슬며시 들어 본다.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쏠려 있었다. 올해는 또 이렇게 시작되는 건가. 익숙한 시선이었다.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사람 반,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 반. 하지만 조금 지나면 다들 날 슬금슬금 피하며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하겠지. 벌써부터 아이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귀에 어른거렸다.
‘쟤 귀신 본대. 쟤랑 닿으면 너한테도 귀신 하나 붙는 거 아니냐?’
‘김효진 아빠도 범죄자라던데 쟤도 뭔가 일 하나 치렀을 것 같지 않냐?’
‘표정 봐.. 소름돋아’
‘쟤 저번에는 복도에서 텅 빈 허공보고 막 소리 지르면서 뒷걸음질 쳤잖아. 나 그거 실시간으로 보고 무서워 죽는 줄.’
가위에서 벗어나려고 잔뜩 힘을 줬다가 긴장이 풀리니 어깨가 시큰거려 오는 게 느껴졌다.
“김효진. 또 잤냐, 또? 넌 언제쯤 정신차릴래.”
도덕 선생이다. 작년에 2학년 담당이었으면 그냥 줏대있게 2학년으로 밀고 나갈 것이지 올해는 3학년을 맡아서 또 만났다. 대부분의 선생들은 신경써주는 척하면서 은근히 나를 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신기한 인간은 소문을 못 들은 건지, 그냥 겁이 없는 건지 항상 나를 귀찮게 했다. 도덕은 한심하다는 듯 효진을 쳐다보며 일장 연설을 쏟아낸다. 차라리 애들처럼 그냥 나에게서 신경을 꺼주었으면 생각하며 한 귀로 흘려듣고 있는데 점점 길어지려는 잔소리를 누군가의 목소리가 끊고 들어온다.
“아, 쌤. 제가 효진이 놀래킨거에요. 얘 안 잤어요!”
소리의 진원지는 바로 옆. 이승준이었다. 방방 뜨는 특유의 목소리. 얼굴이 안보여도 누군지 단번에 알아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참 신기한 애였다. 갑자기 아파트 같은 층에 이사와서 안면도 없는 나에게 10년지기 친구라도 된 것처럼 말을 걸지를 않나, 여하튼 갑작스러운 구석이 많은 애였다. 그런데도 밉지가 않았다. 그 일이 있었던 후로, 나에게 다가왔던 사람들은 제멋대로 나를 판단하고 동정하거나 무서워하는 사람들뿐이라 인간관계를 단절해버린지 오래였다. 앞에서는 선한 척하며 웃다가 돌아서면 수군거리는 사람들에 지친 것도 있고. 이미 문드러질대로 문드러진 나에게 감당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긴다면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을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마음의 문을 꽉꽉 닫아 걸었다. 그런데 이승준이 그 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열고 들어온 것이다.
처음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였다. 아무 반응이 없는 상대에게 말을 거는 게 힘들지도 않는지 세상에서 제일 신난 얼굴로 계속해서 조잘댔다. 엘리베이터에서 계속 마주치다 보니 등교도 같이 하게 되는 날이 많았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올해 같은 반이 된 것이다. 분명 전학와서 사귄 친구들에게 내가 환각을 본다는 것이나 내 이상한 행동들에 대해 들었을 텐데 이승준은 변함이 없었다. 혹시 아직 모르고 있는 걸까. 어느 날 그 소문을 알게 되고 날 피하기 시작한다면?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왔다. 너무 의지하게 되어 버렸나. 환하게 웃는 이승준을 보면, 문득 이 아픔을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어둠 속에 있을 때면 나타나는 환각들이 너무 두려워 탈진할 때까지 울었던 그 밤들을, 가끔은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어 벌어졌던 이상한 일들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 내가 이런 것들을 말하면, 너는 나를 무서워하게 될까.
기대감을 가질수록 나에게 돌아오는 상처는 더욱 커진다. 이것이 효진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얻은 인생철학이었다. 그래서 사람을 사귀지 않은건데. 너는 모르는 사이에 내 정말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
이승준은 제 딴엔 완벽한 거짓말을 친 뒤 내게 날라오는 잔소리들을 중단시켜 주려고 한 것이겠지만, 되려 수업시간에 친구를 왜 놀래키냐고 자신이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잔소리 대상이 바뀐 것일 뿐 전과 똑같은 상황인데도 슬쩍 나를 바라보고는 우쭐거리며 내 책상 위에 무언가를 휘갈겨 썼다.
[mision complit!]
철자가 틀렸다는 것은 알고 있을까. 한치의 고민도 없이 휘갈겨 쓴 걸 보면 신경도 안 쓰는 게 분명하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고민 없이 웃어 본게 얼마만이지. 이승준이 미쳤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계속 킥킥대고 있는데 무언가가 머리를 쎄게 친다. 출석부다.
“김효진. 뭐하냐? 수업시간에 대놓고 짝이랑 장난을 치질 않나 킥킥거리지를 않나. 전에는 하루종일 잠만 자더니 이젠 떠들기로 했니? 종례 끝나고 교무실로 와라.”
아. 망했다.
무슨 반복재생도 아니고 똑같은 레퍼토리로 반복되는 잔소리를 한참동안이나 들은 뒤 교무실에서 나와 보니 어느새 해가 자취를 감춰 가고 있었다. 아무리 겨울이라지만 해가 이렇게나 빨리 지면 내가 맞아야 하는 밤의 시간은 또 얼마나 길어지는 걸까. 이래서 효진은 겨울이 싫었다. 효진은 나무 그림자 사이로 잘게 비치는 마지막 햇빛 한 조각을 바라보다 발로 꾹 밟아 눌렀다. 이렇게 밟아 두는 걸로 햇빛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햇빛이 서서히 어둠에 부스러져 가는 모양을 지켜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달려와 어깨를 끌어당겼다. 활짝 웃은 얼굴이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이승준이었다. 입꼬리가 잔뜩 올라간 채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웃을 수 있지. 예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 황급히 머리를 내저으며 그 생각을 떨쳐낸다. 다시 태연하게 바라보려고 애쓴다. 운동이라도 하다 왔는지 앞머리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이 겨울에 얼마나 뛰었으면 저렇게 땀이 나는걸까.
“효진! 잘 혼나고 왔냐? 그러게 왜 뜬금없이 웃어가지고”
애들이랑 농구하다가 누가 나무 밑에 한참을 가만히 서 있는 걸 보고 김효진이구나 싶어서 달려왔댄다. 다시 안 가도 되냐니까 행님이 널 데려다주겠다고 능청을 부린다. 그러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는 둥 소리지르며 내 손을 끌어당기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간다.
이승준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핫도그 가게. 왜 마저 안 놀고 나를 따라오나 싶었는데 이거 때문이었나. 아까 잔소리에서 구해준 기념으로 한턱을 내라고 끊임없이 조르는 승준에 핫도그 두 개를 사 하나를 쥐어 주었다. 엄밀히 말하면 잔소리에서 구해준 건 아니었지만 하나 사주지 뭐 하는 생각으로 그냥 돈을 냈다. 핫도그를 건네 받자마자 입안에 마구 쑤셔 넣더니 목이 막혔는지 켁켁거린다. 내가 피식 웃으니 자기도 따라 웃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지한 표정을 하고는 말한다.
“그래도 웃으니까 좋다 야. 니가 하도 안 웃어서 그동안 너무 힘들어 보였는데 이렇게 웃으니까 좋지 않냐. 아까 너 웃는거 거의 처음으로 봐서 깜짝 놀랐잖아”
“그러냐.”
적막하게 가라앉은 공기에 어색했는지 헛기침을 하더니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너.. 환각 본다면서. 무슨 힘든 일 있었던 거야?”
알고 있었구나. 심장에 무거운 추를 메단 것처럼 순식간에 쿵 내려앉았다. 힘든 일 있었냐는 한 마디에 가슴이 북받쳐오른다. 너무 듣고 싶었던 한 마디였는데. 방에서 혼자 울 때면 다른 사람이 이 말을 해줬으면, 내가 괜찮은지 물어봐 줬으면 좋겠다고 셀 수 없이 생각했는데.
안돼. 여기서 울면 얼마나 이상하겠어. 떨려오는 목소리를 애써 누르고 말한다.
“...알고 있었어?”
“뭐.. 어쩌다가 들었는데.. 말하기 힘들면 말 안해도 돼. 내가 괜히 민감한 얘기를 꺼냈나..미안해...”
다 말하고 싶은데, 말하기 싫은 게 아닌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동안 많이 두려웠는데, 넌 생각보다 더 좋은 사람이었구나. 알고서도 나를 피하지 않는구나. 하지만.. 지금은 말할 수 없었다. 정말 여기에서 얘기하다가는 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또 그 밝은 웃음이 내 상처를 공유하는 걸로 인해 조금이라도 일그러진다면 내가 더 힘들 것 같았으니까.
“괜찮아.. 별일 없었어”
우리는 말없이 그저 걸었다. 나는 벌써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며 걸었고 옆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간혹 느껴졌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승준이 나에게 미안해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난 너무 고마운데.
거리를 스산한 공기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정적을 메꾸기 위해 발을 질질 끌며 걸었다. 습관적으로. 순간 기분 나쁜 기억 한 조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사람과의 기억이었다. 술을 잔뜩 마시고 초점이 나간 눈으로 눈에 보이는 것들을 집어 던지고. 마구 주먹을 휘두르던 그 기억을 자신만 싹 다 잊은 채 다음날 태연하게 사과를 건네는 그 사람의 모습. 답하지 않는 나. 그리고 난 정적이 흐를 때 그 정적이 싫어 발을 보도블럭에 꾹 눌러서 끌며 걷고는 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을 그 사람이 너무 증오스러웠다. 왜 내 일상의 구석구석에 남아 나를 괴롭히는지 원망스러웠다. 그것도 모자라 가끔씩 어둠이 나를 덮칠 때 그날 밤의 모습으로 찾아오는 것이 너무도 괴로웠다. 머리가 무언가로 조여지듯 아파 오는데 갑자기 말없이 걷던 이승준이 함성을 터트렸다.
“악! 와 진짜 나는 체질상 고요한 게 너무 안 맞는 것 같애. 말없이 걸으려니까 막 몸이 배배 꼬이고..”
신기하게도 머리를 조여오던 매듭이 풀린 느낌이었다. 정적이 가시니까 내 기분도 조금 더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이 장악했던 머릿속이 다시 이승준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이승준은 아파트 앞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조잘대며 얘기했다. 얘랑 있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더 깊은 기억으로 빠져들었다면 당장 눈앞에 환각이 나타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이승준이 내일 보자며 손을 흔들고, 각자 집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반대편 복도로 걸어가는 이승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손잡이를 잡았다. 그 순간 머리가 핑 돌면서 어지럽게 시야가 회전했다.
겨우 눈에 초점을 맞추고는 문을 연다. 아직 어지러웠다. 불안한 느낌이 엄습해왔다. 괜찮겠지. 불안하다. 발밑에서 유리 바스러지는 소리가 난 것 같다.
소주병 조각이 익숙한 모양으로 늘어져 있었다.
발이 바닥에 스치는 소리 사이에 간헐적으로 어떤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삐이- 하는 소리. 현실에서 나는 건지, 아니면 나의 환청인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이 소주병 조각들은 다 뭐지. 너무 익숙해. 그날이다. 그날이 또 돌아왔어. 살려줘. 누가 나좀 살려줘.
어둠이다. 저쪽 벽에서부터 어둠이 꿈틀거린다. 형체를 바꿔가며 나에게로 다가온다. 두 개다.
방 구석에 두 개의 형체가 보인다. 하나는 누워 있고 하나는 구부정한 어깨를 한 채로 서 있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 것만 같다. 자의와는 상관없이 다리가 저절로 움직인다.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 사람. 술에 찌들어 시뻘건 눈을 한 채 덜덜 떨며 하는 말. 효진아 아빠가....아빠가 미안해....효진아...
유리병 조각 위로 몸을 펼치고 한 여자가 늘어져 있다. 엄마다.
그날의 엄마가 잔상으로 남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몸이 덜덜 떨려온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서서히 낙하한다. 어두운 사방이 꼭 그날과 같다. 불을 켜면, 이 불을 켜면 저 방 한구석에..
그 사람이 서있을 것만 같다. 엄마가 허공을 응시한 채 축 늘어져 숨을 가쁘게 몰아 쉬고 있을 것만 같다. 그 사람이 나를 보고 있을 것 같다. 아니 보고 있다. 두 개의 초점 잃은 눈동자가 나를 정확히 응시하고 있다.
이건 환각이야. 사실이 아니야. 이건 환각이야. 하지만 두려워.
환각이 아니면, 어떡하지.
무서워. 어둠이 무서워. 살려줘. 어떡하지. 누가 나 좀 살려줘.
누군가가 떠올랐다. 이승준.
정신 없이 뛰쳐나와 문을 열었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달려 나와 저쪽 복도로 달린다. 발을 헛디딘다. 차가운 바닥에 철퍼덕 엎어진다. 무섭다. 여기도 어둠이야. 머릿속이 그 사람으로 가득해지기 시작한다. 안돼. 아니야. 뭔가 다른걸 생각해야 돼. 이승준. 그 애의 웃음. 밝은 얼굴. 환한 미소. 엎어져 있는 내 얼굴 위로 갑자기 밝은 빛이 비춘다. 어둠이 사라진다. 문이 열렸다. 누군가 다급하게 다가와 내 얼굴을 확인한다.
“왜...왜 울어 왜 그래! 뭔 일 있어?”
이승준이다. 많이 놀랐는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다.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졌다. 너를 보니 마음이 서서히 진정된다.
“그 사람이.. 있었어.. 우리 집에.. 분명히..환각인 줄 알았는데도... 또.. 그때로.. 돌아간 줄 알고...”
눈물이 끊임 없이 타고 내린다. 빛이 밝았다. 내게는 이 빛이 태양보다도 밝았다.
“나는.. 밖에서 쿵 소리가 나길래.. 집으로 들어가는 너 모습이 뭔가 불안해 보여서 혹시나 하고 문을 열었더니..”
이승준이 울고 있었다.
“왜 니가 울어..”
“니가 우니까...그리고..너무.. 힘들어 보여서...”
이승준이 바닥에 주저앉더니 펑펑 울기 시작한다. 나도 눈물이 흐른다. 억지로 막아놓았던 배수관이 터진 것처럼 눈물이 난다. 그동안 위태롭게 쌓아두었던 아픔이 눈물을 타고 흘러내려 밖으로 나간다. 이승준이 나를 꼭 안아준다. 품이 따듯해서 눈물이 난다. 이렇게 같이 울어주는 게 너무 고맙고 고마워서 또 눈물이 난다. 네가 빛이었구나. 네가 내 빛이야. 밤이 되어도 어둠 속을 밝게 비춰주는 나의 해. 나는 아마도 이 해를 많이 사랑하게 될 것 같다.
나에게 다가와 줘서 고마워. 함께 울어 줘서 고마워. 어둠이 가득한 내 세상 속에서 빛이 되어 줘서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